The Way I am — 광야의 길과 새벽빛

말씀과 함께 걷는 길

하나님 광야에서 배우는

제목을 누르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5편의 이야기
015

밤과 낮에 대한 인식

015 밤과 낮에 대한 인식

DAY 15 밤과 낮에 대한 인식 - 밤과 일출

015 밤과 낮에 대한 인식

그날은 수업이 없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스승님이 내 방에 찾아오셔서

나를 깨우며 말씀하셨다

"가자.

수업 시간이야. 밖으로 나가자꾸나."

나는 반쯤 잠에 취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순순히 그분을 따랐다.

스승님은 나를 언덕으로 데려가셨고,

우리는 밤의 어둠 속에

자리 잡고 앉았다

스승님이 물으셨다.

“어느 것이 먼저일까?

밤일까, 낮일까?”

“낮이요.

낮이 지나야 밤이 오니까요”하고

내가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하지.

그들은 그렇게 생각 하거든.

낮이 밤으로 이어진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란다."

"무슨 뜻이죠?"

“낮이 밤으로 이어진다면 모든 것은

빛에서 어둠을 향해 나아가며

점점 더 어두워지게 되지.

모든 것이

어두워지는 과정 가운데 있는 셈 이란다.

세상의 이치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낮에서 밤으로,

젊음에서 늙음으로,

강함에서 약함으로

궁극적으로는

생명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지.

낮에서 밤을 향해 가는 것은

세상의 이치일 뿐

하나님의 방식은 아니란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낮과 밤의 순서가 달랐지.

성경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하루는

밤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거야.

밤이 있고. 그 다음에 낮이 있었지.

하나님 안에서는 밤이 먼저 온단다.”

"그래서 유대인의 절기나 안식일이

항상 해 진 후에 시작되는 것이군요."

"그래.

유대인의 절기나 안식일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날이 그렇지.

모든 날이 해가 진 후에 시작된단다.

저녁이 있고,

그 다음에 아침이 오는 것이지.

세상은 낮에서 밤으로 흘러가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그 반대란다.

밤에서 낮으로.

어둠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지.

이 세상의 자녀들은

낮에서 밤을 향해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밤에서 낮을 향해 살아간단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거듭나

낮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지.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이것이 바로 네 삶의 질서란다.

너는

어둠에서 빛으로,

약함에서 강함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죄책감에서 결백함으로,

눈물에서 기쁨으로,

그리고

죽음에서 생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그러니

하나님의 거룩한

시간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렴…

네 삶 전체가 항상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가도록 말이야."

스승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첫 새벽빛이 모습을 드러내며

밤이 낮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

--------------------------

오늘의 미션

당신의 삶에 있는 어둠은 무엇인가? 두려움, 죄, 문제, 우울의 어둠인가? 오늘 그 어둠을 뒤로 하고 낮의 빛으로 나아오라.

창 1:3-5,

시 30:5,

엡 5:8,

벤전 2:9.

벤후 1:19

창 1:3-5,

시 30:5,

엡 5:8,

벤전 2:9.

벤후 1:19

014

하나님께 입맞추기

014 하나님께 입맞추기

DAY 14 하나님께 입맞추기 이쉬케니 : 신성한 입맞춤

*이쉬케니(yishkeni)는 히브리어로 '그가 내게 입맞추게 하소서'이다

014 하나님께 입맞추기 - 이쉬케니(yishkeni)

학교 야외 텐트에서 모임이 열렸다.

찬양과 경배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냥 텐트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스승님이 물으셨다.

" ‘경배'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니?"

"노래, 찬송가, 기도, 찬양의 말들이요..."

“그건 경배의 외적 모습들이란다.

경배가 나타나는 방식이지.

그러면 경배의 핵심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어요."

"한 가지 정의, 곧 비밀을 알려 주마.

이것은 새 언약의 말씀에 나타나는데,

헬라어 원문에만 그 의미가 드러난단다.

바로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라는 말이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아니?"

내가 답을 하지 못하자,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입맞춤한다'는 뜻이야.

참된 경배는 입맞춤하는 것이란다

이것은 무엇을 드러내는 걸까?

입맞춤이란 무엇이지?

그것은 가장 친밀한 행위란다.

그러므로 경배는

네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것이 되어야 하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께 입맞춤하는 것이라고요?”

"영적 영역에서는 그렇단다.

네 마음으로,

내면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입맞춤하는 것이지.

또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유롭게 하는 것이란다."

"그러면 참된 경배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넘쳐흐르는 것을

자유롭게 드리는 것이군요."

스승님이 또 물으셨다.

“그런데 왜 사람은 입맞춤하는 걸까?”

"기뻐서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래. 입맞춤은 기쁨의 표현이지.

입맞춤은 또한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한단다.

그래서

참된 경배는 곧 기쁨의 표현이지.

너는 기쁨에서 우러나와 경배하게 된단다.

너의 기쁨은 경배가 되고,

너의 경배는 다시 기쁨이 되지.”

내가 말했다.

"스승님, 가장 당연한 것을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그게 뭐지?"

"사랑해서 입맞춤하는 거예요.

입맞춤은 사랑의 표현이니까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참된 경배란 무엇일까?"

“경배는 사랑의 표현이에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바로 그거야.

사랑과 기쁨의 가장 친밀한 행위이지.

경배는 하나님께 입맞춤하는 것만큼

단순한 것이란다."

------------------------

*이쉬케니(yishkeni)는 히브리어로 '그가 내게 입맞추게 하소서'이다

------------------------

오늘의 미션

경배하며 사랑과 기쁨으로, 그리고 가장 깊은 친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입맞춤하는 비밀을 배우라.

시 42:7-8,

아 1:2,

요 4:24

시 42:7-8,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아 1:2,

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요 4:24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013

동서를 잇는 하나의 축 - 케뎀의 신비

013 동서를 잇는 하나의 축 - 케뎀의 신비

DAY 013 동서를 잇는 하나의 축--케뎀의 신비

013 동서를 잇는 하나의 축 - 케뎀의 신비

새벽이었다.

우리는 사막 풍경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케뎀(kedem)'은 히브리어로 동쪽을 뜻하는데.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방향이란다'

내가 물었다. "이유가 뭐죠?'

“예루살렘 성전은

케뎀 원리에 따라 세워져

동쪽을 향해야만 했지.

번제단은 가장 동쪽에,

지성소는 가장 서쪽에.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은 그 사이에 자리 잡았단다.

그러므로 성전 안의 모든 것이 동서로

이어지는 연속선상에 존재했던 셈이지.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식도 바로

이 축 위에서 진행되었단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일 년 중 가장 거룩한 날인

욤 키푸르(Yom Kippur, 대속죄일)에

이 축 위에서 이스라엘의 죄가 속죄되어

백성에게서 제거되었다는 점이지.

대제사장은 동쪽에서 제물을 바친 다음,

서쪽에 있는 언약궤 위에

그 피를 뿌리곤 했단다.

동서로 뻗은 이 축 위를 오가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날의 마지막 의식은

백성들의 죄가 성전에서 제거되어

동쪽 광야로 옮겨지는

상징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지."

“그런데 남북으로 이어지는 축이 아니라

굳이 동서로 이어지는 축이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왜 더 중요한 거죠?"

스승님이 대답하셨다

"그것은 지구가 둥글고

동서로 이어지는 축을 따라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북극과 남극은 존재하지만,

동극이나 서극은 있을 수 없는 것이지."

"여전히 잘 이해가 안 돼요."

"남쪽에서 북쪽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그것은 유한하단다.

모든 북쪽은 북극점에서 끝나고,

모든 남쪽은 남극점에서 끝나지.

만일 성전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축 위에 세워졌다면

죄가 죄인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정도만 옮겨졌을 거야.

하지만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될 까?

동쪽과 서쪽에는 극점(끝)이 없단다.

그러니 결코 끝이 없지.

동과 서는 무한하단다.

영원히 이어지지.

사실 '동쪽'을 뜻하는 히브리어 '케뎀'은

영원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아무도

지구가 둥글다는 걸 몰랐잖아요."

"하나님은 알고 계셨지.

또 이 모든 것은 메시아의 대속,

곧 우리의 구원을 보여 주는 그림자란다.

그렇다면 메시아 안에서

하나님은 네 죄를 얼마나 멀리 옮기실까?

무한의 거리… 영원의 거리란다.

하지만 네게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결코 다시는 그 죄들을 찾을 수 없을 거야.

성경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옮기셨다'고

기록된 바와 같단다."

---------------------------

오늘의 미션

오늘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를 멀리 옮겨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 사랑에 합당하게 살아가라.

레 16:14,

시 103:10-12

012

광대하고 우주적인 사랑

012 광대하고 우주적인 사랑

012 우리의 입장에 서신 하나님

--- 광대하고 우주적인 사랑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사랑을 정의해 보렴."

"사랑은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랑은 자신을 타인의 위치에 두는 것 이란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그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며,

그들의 짐을 대신 질어지고,

그들에게 네 삶을 내어주는 것이지."

“정말 멋진 말이네요.”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단다.

만일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틀림없이 가장 크고 위대하고

궁극적인 사랑이셔야만 하겠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니?"

"네, 그럼요."

“그렇다면 말이다. 사랑한다면

어떻게 행할 수밖에 없을까?"

"사랑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타인의 위치에 둘 수밖에 없겠 네요."

"그러면 사랑이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모습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신을

다른 사람의 위치에 두시는 건가요?"

“그렇지. 그렇다면 그것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은 뭐지?"

“하나님이 우리와 처지를 바꾸어…

우리 입장이 되어 보셔야 만해요."

"맞아. 그리고 우리의 감정도

느껴 보셔야만 하지."

"우리의 눈물도 흘리셔야 하고.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또 우리의 짐과 심판, 그리고 죽음도

대신 짊어지셔야 한단다.

우리를 구원하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말이야.

그분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려 하시겠지."

내가 말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분명 그렇게 행하셨을 거예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이

이미 지구상에 나타났단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 위치에 두셨지.

그러므로

이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사랑은 없단다.

네가 아는 그 어떤 사랑보다도

위대한 사랑이지.

네가 그 사랑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단다.

그 어떤 것도

이 사랑을 바꿀 수 없으니까.

네가 선한 일을 행한다고 해서

이 사랑이 더 커지는 것도 아니고,

죄를 짓는다고 해서 줄어들지도 않지.

네가 느끼지 못해도 그 사랑은

변함없이 거기에 있단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바꿀 수 없어.

다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 변화될 뿐이지.

우리는 그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내어 맡길 뿐 이란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

이미 나타났거든.

하나님이 내려오셨지.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우리도 그분처럼

행하면 되는 것 이란다."

-----------------------

오늘의 미션

오늘 신성한 우주적 사랑을 실천하라.

자신을 다른 사람의 위치에 두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려 보라.

요 15:12-13,

롬 5:6-8,

빌 2:5-9

요 15:12-13,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롬 5:6-8,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빌 2:5-9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011

물속에 비친 얼굴

011 물속에 비친 얼굴

우리는 한참을 걸어서 사막 산기슭에

숨겨진 물 웅덩이에 도착하여

그 언처리에 앉았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웃어 보아라."

그래서 옷음을 지었더니.

다시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게 아니라 물을 들여다보며,

물 위로 몸을 숙이고 웃어 보렴."

그래서 나는 말씀하신 대로

웅덩이에 몸을 숙이고 웃었다.

"이제 성난 표정을 지어 보아라."

이번에도 말씀하신 대로 했다.

“이제손을 펴서 마치 선물을 주는 것처럼

물 위로 뻗어 보렴”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해 보겠니?"

“반대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물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주먹을 쥐고

마치 무엇을 끄집어 내는 것처럼

다시 손을 거두어 들이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분명 의미가 있고 말고.

그것도 네가 반드시 배워야 할

대단히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단다.

네가 물을 들여다보며 미소짓자,

한 남자가 너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지."

“제모습이 비친 거죠."

"또 네가 노려보면

화가 난 얼굴이 너를 노려보았고,

네가 손을 뻗어 무언가를 주려 했을 때는

물속에서도 너에게 무언가 주려고

손을 내밀었단다.

하지만 네가 무언가 빼앗으려

물 쪽으로 손을 내밀자,

물속에서도 네게서 무언가 빼앗으려는 듯

손을 뻗어 왔지.

이것이 바로 '반사의 법칙 이란다.

네가 행한 그대로

너에게 돌아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축복하면 너 또한 축복을 받고,

축복을 거두면 너에게 올 축복도

물러가게 될 거란다.

네가 움켜쥐며 살아가면

결국 네가 가진 것도 빼앗기게 될 것 이고,

반대로 베풀며 살아가면

결국 너도 받게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

너도 비난을 받게 되고,

용서하면

너 또한 용서받게 된단다.

네가 손을 거두고 인색하게 살아가면

너를 향한 그분의 손길도 굳게 닫히겠지만,

손을 내밀어 관대하고 후하게 살아간다면

그분도 너를 향해

손을 내밀어 주실 것이란다.

네가 주는 대로 돌려받게 되고,

움켜쥐는 것은 그대로 빼앗기게 되지.

그러므로 사랑과 나눔,

축복과 긍휼의 삶을 살아가거라.

그리고 넉넉하고 후한 손길과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렴

무엇을 하든 여기서 본 것을 기억하고,

물속에 비친 그 얼굴을 인식하며

네 삶을 살아가거라."

-------------------

오늘의 미션

당신은 삶과 타인으로부터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오늘 당신이 구하는 바로 그것을

다른 이에게 베푸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잠 27:19,

눅 6:37-38,

갈 6:7-10

010

뱀 사냥꾼 (뱀의 피)

010 뱀 사냥꾼 (뱀의 피)

스승님이 질문하셨다.

"저게 보이니?"

"바위 뒤에 있는 것 말인가요?"하고 내가 물었다.

거기에는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뱀이

사막의 모래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그분이 물으셨다.

"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니?"

"피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그게 전부니?"

"아는게 별로 없네요."

”뱀이 냉혈동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단다."

"왜 그게 중요하죠?"

“사람은 온혈동물이란다.

그래서 달리고 또 달릴 수 있지.

하지만 뱀은 냉혈동물이라

인내하고 견디거나

계속 나아가는 데 한계가 있단다.

그래서 너는 뱀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이지."

”좋은 정보네요" 하고 내가 답했다.

"성경에서 뱀은 악을 상징한단다."

"왜 그렇게 된 거죠?"

“뱀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악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 주기 때문이지.

뱀은 보통 몸을 비틀면서 이동한단다.

그런데 악의 본질도

비틀고 왜곡하는 데 있지.

거짓은 진실을 부정하고

정결한 것을 비들고 왜곡한단다.

그리고 악 자체도

선을 왜곡하고 비튼 것이지."

"그렇다면 뱀이 냉혈동물이듯이,

악이라는 존재도 어떤 의미에서는

냉혈동물과 같다는 말씀인가요?"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악은 말 그대로

냉혈동물처럼 냉혹하고 무정하지.

그 의미는 이렇단다.

비록 악이 번성하고 승리하며

자기 때를 만난 것처럼

활개치고 공격할지라도,

그 본질은 여전히 냉혈동물과 같다는 거야.

따라서 절대로 오래 버틸 수 없지.

악이 아무리 강력하고 승승장구하며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여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거든.

속임과 기만, 증오와 비방, 그리고 억압 ….

모든 악이 냉혈동물과 같단다.

그래서 그 능력은

단기적이고 찰나에 불과할 뿐이지.

악의 날들은 항상 정해져 있고,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어 있단다."

"하지만 선은 냉혈이 아니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단다. 그래서 결국 선이 항상 악보다

오래 버티게 되어 있지.

그러므로 선한 일에 인내하고,

진실된 것을 계속 행하며,

옳은 것을 위해 굳건히 서 있으렴.

그러면 결국 이겨내고 승리하게 된단다..“

-------------------------------------

오늘의 미션

어떤 악이나 어려움, 공격, 죄악에 직면하더라도 굴복하지 마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선을 일고 나아가라.

사 54:17,

마 24:13,

요 1:5

009

히브리어의 신비 1-4 샤마임과 아레츠

009 DAY 히브리어의 신비 1-4 샤마임과 아레츠

009 히브리어의 신비 샤마임과 아레츠

칠흑같이 어두운 밤

그분이 나를 모래벌판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우리는 거기에 누워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승님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씀하셨다.

"참으로 광대하지."

나는

"하늘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하늘'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샤마임(shamayim)'이고,

'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레츠(aretz)'란다.

어떤 히브리어가 -임(m)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복수형이라는 뜻이지.

그러면 이 사실은

너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걸까?"

“하늘을 뜻하는 말은 복수형이지만.

땅을 뜻하는 말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요?"

“그래. 샤마임, 즉 하늘은 복수형이고,

땅을 뜻하는 아레츠는 단수형이지.

그런데 이 단어 자체가 아니라,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중요하단다."

“그게 뭔데요..?"

"땅에 속한 것은 단수란다.

물질 영역에 속한 것은 유한하다는 뜻이지.

물질적인 것은 모두 한계가 있어.

그래서 네가 이 땅의 영역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얻고,

이 땅의 재물을 아무리 많이 소유하더라도

결코 그것이 너를 채우거나

완전하게 할 수는 없단다."

내가 말했다.

"그것들이 제한적이고. 유한하기 때문이군요."

"그러니 물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삶이란..."

“한계로 가득 찬 삶이겠네요.”

"그러나 네 마음에서 물질적인 것들을 비워내면..."

"그렇다면 한계들을 스스로 비워내는 것이네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이처럼 땅의 것들은 유한하지만,

하늘의 것들은 무한하지.

물질적인 것은 한계가 있지만,

영적인 것에는 한계가 없거든

오직 영적인 것,

무한한 것만이 네 마음을 채울 수 있단다."

“하지만 어떻게 이 땅에 속한 삶에서 벗어나죠?"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벗어날 수 없단다.

이 땅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이 땅에 속한 것들로 살아갈 필요는 없지.

이 땅의 일들을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지만,

그것들로 네 마음을

채울 필요는 없다는 뜻이란다.

하늘의 것들에 네 마음을 두고,

영적인 것으로 네 마음을 가득 채우렴.

하늘은 샤마임이고,

샤마임에는 한계가 없으니까.

그러므로 영적인 것과 하늘의 것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은..."

"한계가 사라지는 거네요.

----------------------------------

오늘의 미션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내려놓으라.

이 땅의 소유물들에 대해 마음을 비우고

영적인 것과 하늘의 것으로 채우라.

사 55:9,

빌 4:8-9

사 55:9,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빌 4:8-9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008

미드바르

008day 미드바르

008 미드바르

스승님이 나를 사막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붉은 산들로 둘러 싸인

거대한 계곡으로 인도하셨다.

산들은 저 멀리 뻗어 나 가며

점점 보라색과 푸른색으로 물들어 갔다.

"이 사막의 황무지를 보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니?" 하고

스승님이 물으셨다.

“건조하고 척박하고.. 뜨겁고 엄혹한 곳,

고단하고 험난한 곳 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상실이나 위기, 비극, 고독,

갈등, 고난, 문제, 이별, 눈물과 같은

힘겹고 어려운 시간을 통과할 때

광야를 지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

그럼에도 광야는 거룩한 곳이란다.

하나님이 그분의 율법과 말씀을 주시고

임재를 드러내신 곳이 바로 이 광야였거든.

광야는 거룩한 곳이지."

“그러면 우리 삶의 힘겨운 시간들도

거룩한 건가요?"

“그분의 자녀 된 자들에게는 그렇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midbar)'란다.

미드바르는

'다 바르(davar)'라는 어근에서 나왔는데,

다바르의 뜻은 '말하다' 이지.

광야가 무엇이라고? 바로 미드바르야.

그렇다면 미드바르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곳이란다.

그분은 어째서 그분의 백성을 광야,

곧 미드바르로 인도해 들이셨을까?

그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였단다.

그분은 모세를 미드바르로 이끌어 들이셔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말씀하셨고,

엘리야도 미드바르로 이끄셔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지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를 광야로 이끌어 들이시는 것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함이란다."

"광야의 어떤 점이

그곳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장소로

만드는 건가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주위를 둘러보렴. 무엇이 보이지?"

"별로 없어요: 바위, 모래, 산이요."

“'바로 그것이 이유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듣지 못하지.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

하지만 광야에서는 그런 것들이 사라진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의 음성을 듣도록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는 것이지.

그러므로 너의 인생이라는 광야를

두려워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그런 방해 요소들을

치워 주시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도 마라.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렴.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

그 분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거라.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힘쓰면

그 분의 음성을 듣게 되어 있단다.

네 인생의 광야는 단순한 광야가 아니거든.

그곳은 거룩한 땅, 미드바르(),

바로 그분의 음성이 들려오는 곳이지."

오늘의 미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는 산만한 것들을 치워 버리고 미드바르, 곧 광야로 들어가 그분의 음성을 구하라.

신 8:2-16,

시 46:10,

렘 29:12-13,

눅 3:2

신 8:2-16,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여호와를 잊지 말라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시 46:10,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렘 29:12-13,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눅 3:2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007

첫걸음 요드의 능력

007day 첫걸음 요드의 능력

007 첫걸음 요드의 능력

스승님이 나를 사막의 협곡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우리는 그 곳의 모래 위에 마주 앉았다.

그분이 막대기를 집어 들고

모래 위에 아주 작은 점을 찍으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의 삶을 바꿀 수 있단다."

“작은따옴표 하나가요?”

"이것은 요드(yud)란다."

"요드가 뭔데요?"

“요드는 히브리어 알파벳 중 가장 작은 글자로,

거의 점 하나에 불과하지.

너무 작아서 놓치기 쉬운 글자란다.

이 요드에서 로마자 T'와 J, 그리고

헬라어 이오타(iota)도 유래했지."

"눈곱만큼도(not one iota)' 할 때 그 이오타요?"

"그래. "일점일획(mot one jot or title)'이라고

할 때의 그 글자이 기도하지.

이 모든 게 바로

이 작은 글자에서 시작되었단다.”

“그래서 가장 작은 글자라고 하신 거로군요.

그런데 이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죠?"

“바로 그게 핵심이란다.

가장 작은 글자이기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지.

히브리어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거룩한 단어들이

바로 이 요드'로 시작하거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인

아훼’YHVH'가 요드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땅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도 요드로 시작하지.

그리고 예수님의 히브리어 이름 역시

요드로 시작한단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가장 위대한 말들이

이 작은 글자로 시작한다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역사들도

가장 작은 획에서 시작된단다.

생명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에서 시작되거든.

이것이 바로 요드의 비밀이란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죠?"

“우리는 새로워지고 변화되도록 부름받았단다.

그러나 우리는 본성적으로

새로움과 변화를 모두 피하려 하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는 걸까?

어떻게 실패의 삶에서 승리의 삶으로 옮겨가지?

그것은 너무나 막연하고 버겁게 느껴지는 일이지.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요드로 시작하는 거란다.

가장 작은 걸음이지만,

가장 위대한 변화로 나아가는

'요드'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부터 시작하렴.

거창한 승리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대한 승리를 향한 요드',

곧 하나의 작은 행동,

하나의 작은 발걸음을 내딘는 것이지.

바로 그 한 걸음, 용기의 요드, 변화의 이오타를 내딛으렴.

새로운 시작의 가장 작은 획이자

네가 부름받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그 요드를 말이야.

가장 작은 획으로

가장 위대 한 일을 시작하는 거란다.

'요드'의 비밀을 적용하는 것부터 시작하렴."

오늘의미션

가장 작고 사소한 행위라도 새로운 방항을 항해 첫걸음을 내딛으라.

당신이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승리의 삶을 향한 첫걸음,

새로운 여정의 '요드'를 시작하라.

욥 8:7,

행 3:4-9

006

칼라의 신비 신부의 신비

006 DAY 칼라의 신비 신부의 신비

006 신부의 신비

도시로 가는 길에

우리는 근처 언덕에 잠시 멈춰섰다.

'보아라." 스승님이 도시 언저리에서 진행 중인

어떤 행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결혼식인가 봐요.

아니면 결혼식 준비 중이거나요" 하고 내가 말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들러리들과 함께 정원에 서 있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우주적인 신비, 즉

그 신비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거란다.

존재란 하나의 사랑 이야기 이지.

아니, 사랑 이야기가 되도록

창조된 것이라 해야겠구나.

신부는 우리 각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창조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그림이란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저마다

신부가 되기 위해 창조되었지.

그래서 절대로 스스로 완전해질 수 없단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존재의 중심,

마음 깊은 곳에서

채움받기를 구하는 이유이지.

신부는 누군가와 결혼하여

연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우리 너머에 계시는

그분과 하나 되지 않는 한,

결코 온전함을 발전할 수 없단다.

또 그것은 우리가 평생에 걸쳐

다른 무언가와 하나 되기 위해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지."

"무엇과 하나 되려 한다는 건가요?"

"우리 마음의 갈망을

채워 줄 것이라고 믿는 대상들,

곧 사람, 성공, 소유, 성취, 돈,

안락함, 인정과 수용, 아름다움,

로맨스, 가족, 권력, 어떤 대의 나 목표,

그 외 수많은 것들이지.

신부는 본래 결혼하여 연합되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기에,

그분과 하나 되기 전까지는

결코 안식을 누릴 수 없단다."

"그렇다면 그중 어떤 것으로도

채움받지 못한다는 건가요?"

"그래. 그중 어떤 것도 신랑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러면 누가 신랑이죠?"

“신랑은 바로 하나님이란다.

우리는 바로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지."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을 찾아야겠군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 이상이어야 한단다.

신부는 단지 신랑을 찾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결혼해야 하지.

그러니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반드시 그분과 결혼해야 하지."

“하나님과 결혼한다고요? 어떻게요?"

"네 삶과 존재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연결하는 것이란다.

너의 가장 깊은 영역들,

곧 마음과 혼, 상처와 갈망, 욕구까지

그 모든 것을 말이야.

그때에야 비로소 너는 완전해질 수 있고,

너의 가장 깊은 필요와 갈망도

충족될 수 있단다.

우리 마음의 신비가 바로

신부의 신비거든.

신부는 또 한 오직 신랑 안에서만

온전함을 발견할 수 있지.

그리고 우리 혼의 신랑은

바로 하나님이란다."

오늘의 미션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은 무엇이든 제거하라.

그리고 당신의 모든 존재, 가장 깊은 내면을 신랑 되신 그분께 연결하라.

신 6:5,

아 1:1-4,

업 5:28-32

005

샤나와 마나 - 당신의 날들을 정하라

005day 샤나와 마나 - 당신의 날들을 정하라

005 샤나와 마나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동안 네 앞에 놓인

‘한 해-샤나(shannanh)’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네 앞에 놓인

‘날-마나(manah)’들에 대해 이야기할 거란다.

앞으로 다가올 이 날들은

너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내가 대답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사실 저에게는 결정권이 없는 걸요."

"하지만 네게 결정권이 있다면 어떻겠니?"

“어떻게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성경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우리의 날들이 유한하기에,

그날들을 헤아려 보는 것이

지혜라는 말이에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래. 그것은

이 구절의 일차적인 의미란다.

그런데 원어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지.

이 비밀은 네 인생의 날들을

변화시킬 수 있단다.

히브리 원문은

'우리에게 우리 날 마나(manah)함을

가르치사'로 되어 있지.

이'마나'는 요나서에도 등장하는데,

하나님이 물고기와 벌레,

그리고 바람을 '마나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단다."

"그렇다면 '마나'에는 분명 '계수하다'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거네요."

"그렇지. 마나는

준비하고 지정한다는 뜻이란다.

그러므로 너는 단순히 너의 날들을

계수할 뿐만 아니라,

너의 날을 준비하고 지정하는 법도

배워야만 하는 것이지."

"그게 무슨 뜻이죠?"

"단순히 너의 날들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며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란다.

너는 그날들을 준비해야 하지.”

"어떻게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준비할 수 있나요?"

“태초의 날들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저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게 아니란다.

그날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이 예비하셨지.

그분이 그날들을 정하시고

그 안에 목적과 뜻을 두셨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너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지."

“어떻게요?"

“바로 기도하는 것이란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인가요?"

“기도는 지금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제가 결정할 수 없는 걸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단다.

선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 안에서 네 날들을 정해 두렴.

그날들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성별(別)하는 것이지.

그리고 너의 날들을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하거라.

너의 날들이 네 삶을 결정하게 두지 말고,

네 삶이 너의 날들을 결정하게 하는 거란다.

또 너의 날들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말고,

그날들을 준비하여

축복과 생명의 그릇이 되게 하렴.

지극히 높은신 분의 목적을 위해

너의 날들을 정해 두는 것이지.”

오늘의 미션

당신의 앞날을 준비하고 구별하라.

그날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고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해 놓으라

시90:12

행19:21

004

루아흐

004day 루아흐

004 루아흐

스승님이 나를 원히 트인

사막 한가운데로 데려가셨다.

바람 이 거의 폭풍 수준으로

물아치는 날이었다.

스승님이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걷자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

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어떠냐?" 하고

그분이 물으셨다.

나는 "힘드네요" 하고 대답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의 언어로 바람은 '루아흐 (ruach)'란다.

하지만 루아흐에는

'성령'이라는 또 다른 의미도 있지.

히브리어로 성령은

곧 '거룩한 바람'이거든.

그러니 네 가 바람을

거슬러 걸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저항을 받아 걷기 힘들어지고 금방 지치겠죠."

그분이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네가 성령을 거슬러 걸으면

그로 인해 네 삶이 저항을 받게 된단다.

네가 하는 모든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일을 줄여도 더 큰 힘과 에너지가 소모되지.

이처럼 성령을 거스르는 것은

'그바람'과 맞서 싸우는 것 이란다.

또 바람을 거슬러 걷다 보면

지쳐서 녹초가 될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성령의 바람이 부는 방향은

어느 쪽인가요?"

"성령은 거룩한 영이란다.

따라서 '그 바람'은 거룩한 방향으로 불며

부정하고 악한 것을 날려 버리지.

이제 다른 것을 시도해 보자꾸나.

들아서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 보렴."

말씀하신 대로 이제 나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분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휠씬 수월하네요"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런 저항도 없기 때문이란다.

너는 바람이 부는 대로 걷고 있었고,

바람도 네 걸음을 도와주었지.

바람이 너를 밀어주니

걷는 게 더 수월해진 거야.

이처럼

네가 바람을 거슬러 걸으면 저항을 받지만,

몸을 돌려 방향을 바꾸면

오히려 바람이 너에게 힘을 준 단다.

성령도 마찬가지야.

네 삶의 방향과 경로를 바꾸어 회개하고

성령 안에서 걸으면

저항이 사라지게 되지.

또 성령도 네게 권능을 주셔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실 테니까.

그렇게 되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모든 일 들이

수월해지게 된단다."

내가 말했다.

"그러니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걸으면

삶이 저항으로 인한 고단함에서

가벼운 산들바람으로 바뀌겠네요."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그렇지. 성령 안에서 걷는 이들에게는

그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오는 법이거든."

------------

오늘의미션

당신의 삶 가운데 성령의 흐름에

거스르는 영역은 어디인가?

오늘 방향을 돌려

그 바람을 등지고 걷기 시작하라.

요3:8,

행 2:2,

갈 5:16-17

003

샤나

003 샤나

스승님이 밤중에 와서 질문하셨다.

“1년이란 무엇이지?”

내가 말했다.”365일이에요.”

“그러나 성경의 거룩한 언어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단다.

한해를 ‘샤나(shannanh)’라 하는데,

여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지,

샤나라는 말은 숫자 2와 연결되어 있단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 가요.”

“샤나는 ‘두 번째’, ‘복제’ 혹은

‘반복’을 의미할 수도 있단다.

천체 물리학이나 자연계에서

한 해란 이미 있었던 일들의 반복이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공전,

계절의 순환,

꽃이 피고 시드는 것,

자연의 부활과 죽음까지

이미 있었던 일들이

동일하게 진행되거나 재연되는 거야.

그래서 1년은 샤나, 곧

과거의 반복인 셈이지.

그런데 지금 네 앞에도

새로운 한 해가 펼쳐지고 있구나.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한 해가 되겠느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자연의 본성은 반복 이란다.

우리가 본래 습관의 존재로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지.

우리는 이전에 해온 대로

똑 같은 일상과 경로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거든.

심지어 그러한 일상과 경로가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경우에도 말이야.

그런다면 다가오는 한 해,

즉 ‘샤나’는 너에게 어떤 시간이 될까?”

“한 해에 ‘반복’의 의미가 있다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거의 이전해와 비슷하겠지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너에게는 선택권이 있단다.

보렴. 히브리어 ‘샤나’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

여기에는 반복뿐만 아니라,

‘변화’라는 뜻도 있단다.”

“어떻게 같은 단어에

정반대의 의미가 있을 수 있죠?”

“네 앞에 놓인 한 해가

정반대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 란다.

세상의 방식은 반복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새로움과 변화의 길이거든.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분을 아는 지식으로 인해

변화될 수밖에 없지.

또한, 네 앞에 놓인 이 한 해,

곧’샤나’가 반복의 시간이 아니라,

변화와 새로운 시작,

그리고 새로운 발걸음의 시간이

되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도 하단다.

옛 방식과 본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그러므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한 해를 보기 원하다면

자연의 영역에서 살아가지 않기로

선택해야 한 단다.

낡은 본성과 반복되는 습관을 따라

행하는 일을 이제는 멈추어야 하지.

오히려

초자연적 영역에서 살아가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뜻과 능력으로 행하렴.

이 땅에서

천국의 능력으로 살아가거라.

그러면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 걷게 될 것이고,

다가올 한 해도

변화의 ‘샤나’가 될 거란다.”

-------------------

오늘의 미션

당신의 옛 방식과 습관,

그리고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라.

이전에는 해본 적 없지만

마땅히 해야 했던 일들을 행하라.

성령의 새로움 안에서 걸으라.

사43:19

롬6:4

고후5:17

002

모든 ’나’들의 근원이신 ‘나’

002 모든 ’나’들의 근원이신 ‘나’

둘째 날이 되어서야 스승님이 오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분은 오후에 찾아오셨다.

스승님이 질문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느냐?”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히브리어 네 글자(‘요드yud’, ‘헤heh’,’바브vav’, ‘헤heh’)로

이루어진 YHVH(야훼)란다.

지극히 거룩한 이름이지.

너무나 거룩해서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하지만 너는 늘 그 이름을 말하고 있지.”

내가 대답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요?”

“저는 그 이름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요?”

“네가 너 자신을 말할 때,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이란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행복을 느낄 때,

사람들은 ‘나는(I am) 행복하다”라고 하고,

슬플 때는

‘나는(I am) 슬프다’라고 말하지.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때에도

‘나는(I am) 누구누구’라고 이름을 붙인단다.

YHVH(야훼)는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이다’,

곧 ‘나는 나다(I am)’라는 뜻이야.

바로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이며,

그 분의 이름이 곧’나(I am) 그 자체인 것이지.”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그분의 이름을 말하는 셈이네요.”

“그렇지, 또 너는 항상 그 이름을 말해 왔단다.

너 자신에 대해 말 할 때

반드시 그분의 이름을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존재의 구조속에 새겨져 있지.”

“왜 그렇게 된 거죠?”

“그것은 네 존재가

그분의 존재에서 나왔기 때문이란다.

그 분은 모든 존재의 ‘(거룩한) 나(I am)’이시며,

모든 ‘나(I am)의 근원이 되시는

‘(거룩한) 나(I am)’이시지.

너의 ‘나(I am)’는

오직 그분의 ‘나(I am)’로 인해 존재하는 거란다.

그러니 네가 그 분으로부터

생겨나 존재하는 것처럼,

네 존재의 이유와 목적도

오직 그 분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지.

그러므로 네 이름을 말하려면

항상 그분의 이름을 말해야만 한단다.

언제나 먼저 그 분의 이름을 말해야만 하지.”

“어째서….”

“그 분이 먼지 계셨고

네 존재가 그 분으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란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흐름이지.

그러니 항상 그분을 최우선에 둔 다음,

모든 것이 그 분으로부터 흘러나오게 해야 한단다.

모든 것이 그 분과 함께 시작되어

그 분으로부터 흘러나오게 해야 하지.

이것이 바로 생명의 비밀이란다.

그 분의 위해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 분이라는 근원으로부터 네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곧

그 분의 살아 계심으로 살아가고,

그 분의 운행 하심으로 움직이며,

그 분의 행하심으로 행동하고,

그 분의 심장으로 느끼며,

그분의 존재로 존재하고,

그 분이 누구이신지에 따라 진정한 너 자신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란다.”

-------------------------------------------------------

오늘의 미션

그 분의 삶을 통해 매 순간 살아가는 비결을 배우고,

그 분의 행하심으로 행하며,

그 분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그 분의 존재하심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우라

출애굽기 3:14~15

사도행전 17:28

001

무한을 품은 단지

001 무한을 품은 단지

아침이었다.

스승님이 진흙으로 빚은 작은 단지를 들고 내 방으로 오셨다.

그 분이 물으셨다.

“한 가지 묻겠다. 작은 것에 큰 것을 담을 수 있을까?”

내가 대답했다. “아니요”

“그렇다면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을 품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대답했다. “아니요”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니, 가능한 일이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그분은 손에 든 단지의 뚜껑을 열며 다시 말씀하셨다.

“가능 하단다.

단지가 열려 있으면 가능한 일이지.

닫힌 용기는 결코 자기 용량보다 더 많이 담을 수 없지만,

열려 있는 용기에는 한계가 없거든,

이제는 불어오는 바람이나 쏟아지는 비,

그리고 심지어 흐르는 강불까지 담을 수 있단다.”

“강물을 다 담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요.”

“영원이 걸릴 수도 있지만, 원리는 동일하단다.”

”그런데 저에게 이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네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어느 쪽이 더 크겠느냐?”

“제가 모르는 게 더 크겠죠.”

“그렇다면 네가 모르는 것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일이로구나.”

“그런 것 같네요”

“하지만 너보다 큰 것,

곧 네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열려 있는 용기가 되어야겠지요.”하고 내가 대답했다.

스승님이 대답하였다.

“그렇단다.

마음을 열어야만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

또한 열린 그릇이 되어야만

너 자신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들도 담을 수 있단다.

진리는 언제나 우리의 이해나 앎보다 크고 위대하지.

네 마음과 생각은 이 토기 그릇처럼 한계가 있지만,

진리는 끝이 없거든, 하나님께는 끝이 없단다.

영원하신 그분은 무한하시며… 언제나 흐르고 계시지.”

내가 말했다. ”강물처럼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래, 하지만 단지가 열려 있으면 한계가 없어진단다.

이 강물마저도 담을 수 있지.

그러므로 지금 네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을 열거라,

오직 열린 그릇과 열린 마음이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담을 수 있으니 말이야.”

-------------------------------------------

오늘의 미션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에 당신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을 열라. 그리하여 자신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을 담으라

이사야 55:1~9

예레미야 33:3

고후 4:7

BIBLE · 성경 교재

레위기

선택받은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그림과 도형을 포함한 교재를 원본 페이지 모습으로 읽어보세요.

PDF 크게 보기 ↗PDF 내려받기 ↓
레위기 교재 1쪽

페이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 / 35

링크 복사

아래 제목과 주소를 복사해 보내주세요.